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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불교총람 인도, 부탄 답사기-인도편

작성자: 한국밀교문화총람님    작성일시: 작성일2017-05-31 10:00:00    조회: 528회    댓글: 0

인도의 불교대학을 둘러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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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나타(Tāranātha)라는 15세기 티베트스님의 불교사를 보면 북인도지역에 오단타푸리, 나란다, 소마푸리, 비크람실라 등 4개의 큰 밀교사원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중 첫 번째 오단타푸리 대학터를 찾아갔다. 파트나 공항에서 2시간 떨어진 비하르 샤리프(bihar sharif)라는 지역에 도착했다. 기록상으로는 나란다대학 규모만큼 큰 불교대학으로 3중 구조의 회랑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각각의 회랑에는 동서남북으로 문이 있어서 대론자들이 논쟁을 하러 오기도 하고, 불법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밀교경전을 공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형태도 남아 있지 않아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나란다 대학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두 번째 사원으로는 나란다 대학터를 찾아갔다. 인도의 나란다 대학터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기원전 5세기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종합대학이자 불교대학으로 12세기 인도를 침입해 무굴제국을 세운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파괴되어 땅속에 묻혔다가 1860년대 영국인 알렉산터 컨닝햄에 의해 발견되어 지금까지 발굴하고 있다.

먼저 1917년에 건립된 나란다 박물관(archaeological museum nalanda)에 들어갔다. 부처님의 시무외인상(buddha in abhaya mudra), 관자재보살, 보현보살 등 여러 보살상이 있었과 청동수투파(bronze stupa), 힌두신 시바(Siva)와 배우자인 파르바티(Parvati)의 상도 있었고, 자이나교의 존상도 있었다. 그리고 금강수(vajrapani), 잠바라(Jambhala), 금강지권을 하고 있는 불상 등 밀교관련 불상도 많이 있었다.
인도 델리박물관에서도 금강저를 들고 있는 비로자나불상을 만날 수 있다. 이 불상도 비하르 나란다(Nalanda, Bihar)에서 출토가 되었다는 설명이 있다.  

자리를 옮겨서 나란다 불교대학터로 이동하였다. 입장료를 내고 입구에 들어서면 확 트윈 나란다 대학터가 보인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은 가장 크면서도 위엄이 느껴지는 불교사원(main temple)이었다. 불교사원은 수투파에 둘러 싸인채 보호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곳곳에 사문들의 수행과 생활 공간인 수도원(monasteries) 생활시설이 보였다. 우물과 음식을 데워먹던 자리도 있었고, 사리자의 사리가 나와서 사리자의 사리탑으로 알려진 곳도 있었다.

셋 번째 사원으로는 비크람실라 대학터를 찾아갔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차로 이동하였다. 차선이 왕복 2차선으로 되어 있어서 추월차선은 반대차선으로 넘어 추월하고 다시 본래 차선으로 돌아간다. 좁은 도로에 타타트럭, 오토릭샤, 자전거, 수레, 물소까지 함께 이용하고 있었다. 다양한 차량과 물소까지 다니다 보니 속도가 느린 차량이 앞에 있으면 추월을 할 수 밖에 없다. 추월을 할 때는 경적소리를 울린다. 그렇게 경적소리를 들으면 도착한 곳은 비크람실라 대학터이다.

비크람실라는  다르마파라(Dharmapala, 783 ~ 820)에 의해 건립되었는데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로 비크람실라 대학터도 곳곳에 파괴된 흔적이 많이 보였다. 이 대학도 1000명의 학생들이 공부를 한 가장 오래된 불교대학 중 하나였다. 불교를 전파하고 확산시키기 위해 훌륭한 학승들을 많이 배출했다고 한다. 그 중 한 인물로 순수한 대승 불교를 기치로 미신적인 관념에서 벗어나서 티베트불교를 개혁하는 데 성공한 아티샤(Atiśha) 즉 디팡카라 (Dipankara)가 대표적인 인물로 소개되고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비크람실라 수투파(Vikramashila stupa)이다. 

정사각형 구조의 붉은 벽돌로 만들어졌으며 승원의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다. 비크람실라 수투파 밑에 있는 벽에는 여러 종류의 부처님과 불교와 관련된 부조물, 비슈누(Vishnu) 파르바티(Parvati)와 같은 힌두교 신들도 묘사되어 있고, 고행자의 모습이나 요가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의 모습도 있으며 다양한 동물도 새겨져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각들은 검게 그을리거나 뜯겨져서 파손되어 있었으며, 그 형체를 알 수 없는 조각들도 많이 있었다. 수투파의 반대편에는 학교터가 있었으며 여러 개의 방이 많이 있었고 방의 많이 있었다는 것은 많은 학생들과 수행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학교터에 아이들이 있어서 디카로 찍으려고 하니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 곳의 아이들은 정말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3개의 불교대학터를 뒤로 하고 캘커타 박물관을 가기 위해 야간 열차에 탑승했다. 인도열차는 연착되는 것이 다반사이기 때문에 기차역에 누워있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20분 정도 늦게 열차가 도착했고 2개의 2층 침상이 있는 독립된 객실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새벽 햇살이 커텐 사이로 들어왔으며 곧 캘커타(calcutta) 역에 도착했다. 캘커타는 인도에서 문화의 수도로서 많은 문학가와 시인과 혁명가들이 나온 도시이다. 지금은 인도의 수도는 델리지만 예전에는 캘커타가 수도의 역할을 했으면, 뭄바이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도시가 바로 이곳 캘커타라고 한다. 캘커타 역에서의 첫 느낌은 인산인해의 인도인들을 보면서 혼란과 번잡함속에서 살아 숨쉬는 인도를 보는 것 같았다. 

인도의 마지막 장소인 콜카타국립박물관에 도착을 했다. 서양식 건물로 되어 있었으며  불교, 미술, 역사, 고고학, 과학, 특별전시관 등 다방면에 걸친 여러 가지의 전시관들이 많이 있었다. 먼저 불교와 관련이 있는 바르후트 전시실과 간다라 조각실을 찾아서보니 대부분의 유물들이 북인도에 속하는 간다라지방의 자말가리(Jamal Garhi)와 로리안 탕가이(Lioryian Tangai)에서 많이 발견된 것으로 보인다.

간다라미술은 서구적인 표현과 동양적인 아름다움이 조화되어 있어 부처의 조각상을 동양미에 서양의 세견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또한 간다라는 대승불교 발전의 중심지로 발달하였기 때문에 더욱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보았다. 명상에 잠긴 부처님, 설법하는 부처님, 열반에 드신 부처님, 왕관을 쓴 부처님, 명상에 잠겨 있는 부처님, 발우를 들고 있는 부처님등 여러 형태의 불상을 보았고, 관세음보살상, 금강저를 들고 있는 마히사수라마르디니 여신상(Mahisasuramardini), 시바신, 자이나교의 창시자인 마하비라상 등 여러 행태의 신들도 많이 있었다.

끝으로 동전박물관에서 찬드라굽타(Chandragupta)시대에 진언자 형태의 구리동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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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해 정사/법륜심인당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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